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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병수의 혼란과 두려움

by talk2861 2025. 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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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가 2013년에 발표한 심리 스릴러 소설로, 치매에 걸린 연쇄살인마의 시선을 통해 인간의 기억, 죄의식, 그리고 현실 인식의 불확실성을 탐구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병수는 한때 악명 높은 살인자였지만, 치매가 진행되면서 기억이 끊기고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이 글에서는 병수가 겪는 혼란과 두려움을 중심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이 던지는 인간 존재와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분석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병수의 혼란과 두려움

기억의 붕괴에서 시작된 혼란

병수의 삶은 기억의 붕괴와 함께 무너집니다. 과거의 범죄 사실을 기억하면서도, 최근의 일조차 잊어버리는 병수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과거의 살인 행각을 죄의식 없이 회상하는 한편, 현재 자신이 다시 살인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심에 휘말립니다. 이 기억의 단절은 병수에게 극심한 혼란을 불러일으키며, 독자 역시 그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며 현실과 망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라는 질병이 단순한 신체적 노쇠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본을 위협하는 깊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병수의 혼란을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현실 인식의 왜곡과 두려움

병수는 주변 인물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사건의 흐름조차 조각난 퍼즐처럼 이해합니다. 특히 딸 은희가 위험에 처했다는 의심을 품으면서부터 병수의 두려움은 극에 달합니다. 그는 경찰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홀로 진실을 파헤치려 하지만, 기억의 구멍과 현실 왜곡으로 인해 점점 자신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됩니다. 병수는 자신이 과연 은희를 보호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위협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립니다. 이 두려움은 단순한 신체적 노쇠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도덕성과 자기 정체성이 무너지는 데서 오는 근원적인 공포입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 절망적인 심리 상태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독자들에게 깊은 불안을 전달합니다.

자신과 싸우는 병수의 내면 갈등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병수는 싸움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위험하다고 의심하는 인물을 경계하며,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의 기억을 의심하고, 판단을 불신해야 하는 상황은 병수를 철저히 고립시킵니다. 과거에는 살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했던 병수였지만, 이제는 생명을 지키려는 몸부림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존엄을 지키고자 합니다. 이 과정에서 병수는 과거의 자신과 싸우고, 치매로 망가져가는 현재의 자신과도 싸웁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의 고독하고 비참한 내면 갈등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붕괴를 인식하는 과정이 얼마나 처절한지를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도 남는 인간성

병수는 끝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지만, 소설은 그의 최후를 단순한 파멸로 그리지 않습니다. 기억이 사라져도, 은희를 지키고자 했던 본능적 사랑과 죄의식은 마지막 순간까지 남아있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인간성을 기억이나 이성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본능의 깊은 층위에 새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병수의 혼란과 두려움은 그의 인간성을 증명하는 고통의 표식이며, 바로 그 고통을 통해 독자는 병수라는 존재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이 소설은 기억의 붕괴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 존엄성과 사랑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합니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치매라는 병리적 조건을 통해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도덕적 복잡성을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입니다. 병수는 연쇄살인마였지만, 동시에 자신의 죄를 기억하고 괴로워하며, 사랑하는 이를 지키려 했던 인간입니다. 그의 혼란과 두려움은 단순히 노쇠의 상징이 아니라, 인간성의 마지막 빛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었습니다. 김영하는 병수의 내면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기억을 잃어도 여전히 자신일 수 있는가?" 『살인자의 기억법』은 이 질문을 통해 오래도록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강렬한 심리소설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