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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은영의 사명감과 외로움

by talk2861 2025.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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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은 귀엽고 기이한 퇴마 판타지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안에는 소명을 품은 한 인간의 고독한 여정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주인공 안은영은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젤리를 보고 퇴치하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지만, 그 힘이 그녀를 돕기보다 점점 더 세상과 단절시키는 요인이 된다.
은영의 사명감은 오히려 외로움의 씨앗이 되었고, 그 감정은 작품 내내 유쾌한 유머 뒤편에서 묵직하게 이어진다.

보건교사 안은영 은영의 사명감과 외로움

보이지 않는 것과 싸우는 사명감

안은영은 평범한 고등학교의 보건교사지만, 실은 보이지 않는 젤리 형태의 영적 존재를 감지하고 퇴치하는 능력을 지녔다. 이 능력은 그녀의 일상을 비범한 전장으로 만든다. 학교 안에 존재하는 각종 혼령과 악의 기운을 혼자 감당하면서도, 은영은 학생들에게 해가 가지 않도록 묵묵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이 선천적이었기에 받아들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감당하는 자세에는 깊은 사명감이 스며 있다. 매번 예측할 수 없는 사건과 마주하며, 손전등 모양의 장난감 검과 에너지 총이라는 어딘가 어설퍼 보이는 도구로 맞선다. 하지만 그 도구들이 상징하는 바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것은 유머와 우스꽝스러움을 방패 삼아 세상의 어두움과 맞서고자 하는 그녀의 태도를 대변한다.

사명감이란 단어는 종종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은영에게 그것은 자신만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이유로 실행하는 것에 가깝다.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거나 타인의 인정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 밖에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임무를 수행한다. 이 점이 독자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준다. 소설은 은영의 이런 태도를 통해 현대 사회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 타인의 안전을 위해 스스로를 소진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사명감 뒤편의 외로움

은영의 능력은 특수하지만, 동시에 치명적인 고립을 초래한다. 사람들은 그녀가 겪는 세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녀의 싸움은 대부분 혼자만의 전투로 귀결된다. 아무리 강한 척을 해도, 매번 기묘한 사건을 홀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은영을 점점 외로운 곳으로 몰아간다. 그녀는 언제나 주변을 살피고,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지만, 마음 깊은 곳엔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존재한다.

특히 그녀의 외로움은 한문 교사 ‘홍인표’와의 관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인표는 유일하게 그녀의 세계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와 함께하면서 은영은 비로소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러나 그 관계조차도 은영에게는 조심스럽고, 한 발자국씩 다가가는 과정을 반복해야 하는 여정이다. 이는 곧, ‘공감’과 ‘이해’가 은영에게 얼마나 절실했는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가볍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은영의 유쾌함과 강인함을 강조하면서, 그 내면에 감춰진 외로움을 독자 스스로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독자들은 그녀의 눈빛,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서 억눌린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녀가 왜 ‘괜찮은 척’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공감하게 된다. 외로움은 그녀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가 사명을 더욱 단단히 수행하도록 만드는 배경이 된다.



은영이라는 존재의 이중성

안은영은 밝고 재치 있는 인물로 그려지지만, 그 안에는 끊임없는 자의식과 자기 검열이 존재한다. 그녀는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란 걸 안다. 그러나 그 ‘이상함’을 통해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이중성은 캐릭터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요소다. 은영은 결코 순수한 히어로가 아니다. 그녀는 자기 회의와 불안을 안고 있는 존재이며, 늘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과 함께 살아간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독자들에게 더 깊은 몰입을 선사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회에서 자신이 부적절하다고 느꼈던 경험이 있고, 은영의 고민은 그 기억을 되살린다. 하지만 은영은 그 불안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계속해서 행동한다. 학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그녀는 여전히 불청객 같은 존재지만, 누구보다도 필요한 인물로 자리 잡는다.

또한, 작가는 은영을 통해 여성 영웅 서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존의 남성적 영웅 서사처럼 외부 세계를 정복하거나 힘으로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공감, 끈기와 책임감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새로운 서사는 현실의 우리에게도 더 가까이 다가온다. 정세랑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과 위트 있는 문장은 이 과정을 더욱 매력적으로 풀어내며, 안은영이라는 인물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보건교사 안은영』은 유쾌함 속에 묵직한 고독과 진지한 책임의식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은영의 이야기는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 우리가 타인을 위해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삶 속에서 얼마나 쉽게 외로워질 수 있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우리 각자의 일상 속에도 안은영 같은 ‘조용한 영웅’이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