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미스터리는 이제 단순히 반전을 즐기는 장르를 넘어, 지역 고유의 분위기와 사회적 맥락을 함께 담아내는 ‘로컬 미스터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서울이나 대도시를 벗어나 지방의 골목, 항구, 탄광촌, 역사적 공간 등을 무대로 삼으며, 공간 그 자체가 스토리의 핵심 요소가 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한국형 로컬 미스터리’로 주목받은 실제 국내 추리소설 4편을 추천작으로 선정하여, 지역성과 서사의 결합을 중심으로 감상 포인트를 소개합니다.
① 김언수 – 『뜨거운 피』 (배경: 부산 변두리 항구 도시, 출판: 문학동네, 2016)
『뜨거운 피』는 부산의 한 변두리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범죄 누아르입니다. 조직폭력배의 이인자인 주인공이 격변하는 항구의 질서 속에서 갈등과 충돌, 배신을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항구라는 장소는 이야기 내내 폭력성과 절망의 배경이 됩니다. 김언수 작가는 부산 방언, 바닷바람, 썰물과 간조가 뒤섞이는 부두의 감각을 세밀하게 묘사하며, 독자는 공간 자체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 작품은 서울 중심의 세련된 미스터리가 아닌, 날것 그대로의 인간 군상과 뒷골목 정서를 담은 진짜 ‘로컬 누아르’입니다. 특히 지역성과 인간성의 대비가 치열하게 충돌하며, 도시가 인물만큼 강한 개성을 가지는 드문 사례로 손꼽힙니다.
② 정유정 – 『7년의 밤』 (배경: 경북 칠곡의 가상 마을, 출판: 은행나무, 2011)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은 경북 칠곡 인근을 모티브로 한 ‘세령호’라는 가상 지역을 배경으로 합니다. 아버지의 실수로 인한 비극이 아들에게까지 이어지는 긴 복수극은, 폐쇄된 마을의 지리적 특성과 맞물리며 극도의 공포와 심리적 압박감을 만들어냅니다. 외딴 저수지, 접근이 제한된 산길, 도로 하나로 연결된 마을 등은 독자에게 물리적·정신적 고립을 함께 체감하게 하며, 이야기를 더욱 강렬하게 만듭니다. 특히 세령호는 실재하는 듯 묘사되어, 지역이 소설의 캐릭터처럼 기능합니다. 대도시에서는 불가능한 구성과 긴장감을 제공하며, 한국형 로컬 미스터리의 상징적인 배경이 된 작품입니다.
③ 김재희 –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 (배경: 일제강점기 경성 및 지방 도시, 출판: 다산책방)
김재희 작가의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는 일제강점기 서울(경성)을 주 무대로 하되, 전주, 대구, 인천 등 다양한 지방 도시로 무대를 확장하며 지역사와 미스터리를 결합시킵니다. 특히 『검은 별』과 『귀신기차』는 지방 도시의 독특한 정서와 구전 전설, 식민지 시대의 불안정한 사회구조를 활용해 미스터리의 밀도를 높입니다. 당시 철도망, 시장, 신사, 조선식 거리 등은 단순 배경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시대의 불안을 투영하는 장치로 작동합니다. 단편처럼 읽히는 각 에피소드 속에는 지역성과 시대성이 촘촘히 엮여 있으며, 탐정물이라는 장르적 쾌감 외에도 역사 속 미스터리를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제공합니다.
④ 김용키 – 『타인은 지옥이다』 (배경: 서울 청파동 고시원, 출판: 위즈덤하우스, 2018)
『타인은 지옥이다』는 서울 청파동의 고시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심리 미스터리입니다. 처음 서울에 상경한 주인공이 저렴한 고시원에 입주하면서 겪는 섬뜩한 이웃들과의 갈등,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불쾌한 분위기, 그리고 점차 드러나는 살인의 진실이 정교하게 얽혀 있습니다. 좁고 음침한 고시원의 구조는 공간 자체로 밀실처럼 기능하며, 인간 불신, 사회적 고립감, 그리고 이면의 광기가 서사를 강하게 이끕니다. 이 작품은 웹툰으로 처음 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19년 OCN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로도 제작되었습니다. 대도시 속 ‘도시의 그림자’에 주목한 한국형 로컬 스릴러의 성공적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한국형 로컬 미스터리는 단순한 공간 설정을 넘어서, 장소가 인물의 심리와 이야기의 구조를 직접적으로 형성하는 장르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뜨거운 피』, 『7년의 밤』, 『경성 탐정 이상』, 『타인은 지옥이다』는 모두 실존 지역 또는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그곳에서만 성립할 수 있도록 짜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피어나는 낯선 감정과 긴장감—이제는 공간도 미스터리의 주인공입니다. 진짜 한국적인 서사를 찾는 독자라면, 이 네 작품으로 로컬 미스터리의 진수를 경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