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소설은 최근 몇 년 사이 도시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 도시와 소도시를 주요 배경으로 설정한 작품들이 늘고 있습니다. 한적한 골목, 오래된 시장, 자연에 둘러싸인 폐쇄적 구조는 미스터리 장르에 독특한 긴장감과 서정을 불어넣죠. 이번 글에서는 지방 도시를 무대로 한 실제 한국 추리소설 4편을 바탕으로, 각 지역이 이야기 전개에 어떤 방식으로 녹아드는지를 감상의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① 정유정 – 『7년의 밤』 (배경: 경북 칠곡의 가상 마을, 출판: 은행나무, 2011)
『7년의 밤』은 정유정 작가의 대표작으로, 경북의 가상 마을 '세령호'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비극을 다룹니다. 이 작품에서 배경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서사의 축이며, 갈등의 본질을 상징합니다. 세령호 주변의 폐쇄된 구조와 외진 지역 특유의 고립감은 사건의 긴장감을 배가시키며, 복수와 죄의 대물림이라는 주제를 더욱 극대화합니다. 지역사회 내부의 침묵과 담합, 그리고 외부로부터 차단된 환경은 미스터리 장르에서 매우 효과적인 장치로 기능하죠. 소도시의 음습한 분위기와 인간 본성의 잔혹함이 교차하며, 서울이나 대도시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밀도 있는 공포를 선사합니다. 정유정의 문장은 지역의 풍경과 사건의 정서를 정밀하게 조율하며, 그 지역이 아니라면 성립될 수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② 김재희 – 『경성 탐정 이상』 시리즈 (배경: 일제강점기 경성 및 지방 도시, 출판: 다산책방)
『경성 탐정 이상』은 일제강점기 서울(경성)을 무대로 하지만, 극 중에서는 대구, 전주 등 당시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한 사건들도 다수 등장합니다. 특히 『검은 별』과 『귀신기차』 편에서는 당시 교통과 통신이 불완전했던 시대의 소도시를 활용하여 고립된 공간 속 미스터리를 정교하게 연출합니다. 지방의 구전설화, 전통문화, 당시 도시민들의 인식이 적극적으로 반영되며,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시대적 맥락과 지역색이 어우러진 미스터리로 발전합니다. 소설 속 공간은 단지 사건이 벌어지는 배경이 아니라, 시대와 기억, 권력이 중첩되는 복합적 장소로 기능합니다. 감상자로서 이 시리즈는 단순 추리를 넘어 지역사적 관점을 갖춘 역사 미스터리로서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③ 김언수 – 『뜨거운 피』 (배경: 부산 변두리 항구 도시, 출판: 문학동네, 2016)
『뜨거운 피』는 부산의 변두리 항구도시를 배경으로 한 범죄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김언수 특유의 하드보일드 스타일이 지역의 강한 개성과 결합되면서, 마치 한 편의 누아르 영화를 읽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주인공은 조직의 이인자로, 항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마약, 밀수, 폭력과의 사투를 벌입니다. 소설 속 부산은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캐릭터들의 정체성과 직결된 생생한 공간입니다. 파도, 부두, 해무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시종일관 음울하면서도 사실적이며, 지방 도시 특유의 폐쇄성과 법망 밖의 인간관계가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부산 방언과 지역적 디테일은 몰입감을 높이며, 감상자로서 ‘도시가 인물만큼 생동한다’는 느낌을 받게 하는 강렬한 작품입니다.
④ 임선우 – 『정육점 여자』 (배경: 강원도 태백, 출판: 다산책방, 2022)
『정육점 여자』는 강원도 탄광 도시 태백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독특한 감성 추리소설입니다. 태백이라는 도시의 쇠락한 풍경, 노후화된 건물들, 노동자의 흔적이 깃든 골목들은 작품 전반에 묵직한 분위기를 제공합니다. 주인공은 작은 정육점을 운영하며 살인사건의 주변 인물로서 사건에 휘말리는데, 이 지역 특유의 정서와 사람들 간의 거리감, 그리고 낙후된 환경이 서사에 고유한 템포를 부여합니다. 추리 구조는 비교적 단순하지만, 분위기와 배경의 활용이 뛰어나며, 도시 자체가 이야기의 캐릭터처럼 작동합니다. 실제로 “이야기보다 공간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감상도 있을 만큼, 태백이라는 장소의 존재감이 뚜렷한 작품입니다.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한 한국 추리소설은 대도시 배경의 작품들과는 다른 밀도와 정서를 가집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독자에게 더 큰 이질감과 흥미를 안겨주며, 각 지역의 특색이 서사의 깊이를 더합니다. 오늘 소개한 『7년의 밤』, 『경성 탐정 이상』, 『뜨거운 피』, 『정육점 여자』는 모두 실존 도시 또는 지역 기반으로, 배경이 서사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훌륭한 사례들입니다. 낯선 지역이 만들어내는 특별한 미스터리, 한 번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